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락리 전투 (문단 편집) === [[7월 7일]] === 이전 날의 전투로 아군이 완전히 철수한 것으로 착각한 북한군 15사단 48연대는 정찰을 소홀히 한 채로 동락리를 통과하고 차량을 이용하여 용원리 일대로 진격하고 있었다. 한편 동락리에 진지를 구축한 3대대는 임부택 중령의 명령으로 이동중 03시쯤에 이동중이던 북한군을 발견하여 9중대가 먼저 교전을 실시하였으며 북한군 지휘부가 이를 소규모 부대의 소란 쯤으로 안 채로 차량 속에서 대기하고 있자 그 틈을 타서 나머지 2개 중대가 06시쯤에 적의 주력을 측면에서 기습하였다. 갑작스런 기습에 당황한 북한군은 별다른 저항조차 못한 채로 분산되어 도주하였다. 그러자 3대대는 신덕저수지 북쪽으로 신속히 전개하여 적을 섬멸하였고 다수의 장비들을 노획하였다. 한편 북한군의 진출로를 차단하기 위해 부용산을 미리 선점하고 있었던 2대대는 당시 만 19세에 불과했던 동락국민학교의 초임 여교사 김재옥이 “국군은 멀리 후퇴했다”는 말로 동락국민학교에 숙영 중인 북한군을 안심시킨 뒤 몰래 4 km가 넘는 산길을 달려와 결정적 제보를 해 준 덕분에 북한군이 동락국민학교에서 숙영중인 사실과 그 규모, 무장 상태 등을 저세히 파악하게 되었다. 이에 2대대가 북한군에 대한 은밀한 공격을 준비하던 중 새벽에 용원리서 총소리가 들려오자 3대대가 공격 중인 것을 깨닫고 부용산 점령 임무에도 불구하고 적에게 타격을 줄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위하여 즉시 동락국민학교로 진격하여 박격포 등으로 기습을 가했다. 갑작스런 기습으로 당황한 북한군은 북쪽으로 후퇴하였으며 국군은 운동장에 사열되어있던 적 장비 다수를 노획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